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학원가에 ‘우리들학교’가 있다. 근처에 서울대학교가 있고, 주변엔 온통 학원들 천지여서 동네는 번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학교가 세들어 있는 5층 건물 외변엔 간판과 광고물로 도배되어 ‘우리들학교’ 간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건물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4층 입구에 ‘우리들학교’라고 쓴 파란색 간판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개로 나뉜 작은 교실들에서는 수학과 과학 수업이 한창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윤동주 시인과 이름이 같은 윤동주 교장은 아주 젊고 소탈했다. 윤동주 교장은 우리들학교의 설립 목적과 과정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교실을 둘러보니까 대학생 이상의 나이로 보이는 청년들이 수업을 듣고 있더군요. 초, 중, 고등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도와준다고 들었는데 혹시 제가 잘못 보거나 들은 건 아닌가요?”

“아니에요, 바로 보셨어요. 우리들학교에선 탈북하면서 학업시기를 놓친 청소년, 청년들이 주로 공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이나 제 삼국을 경유하여 대한민국에 오면서 배움의 시기를 놓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학생들 나이는 적게는 17세에서 34세까지로 연령대가 높은 편이지요.”


2010년에 설립된 우리들학교는 공부를 하고 싶지만 제도권 안에서는 나이 제한으로 인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탈북민이나 비보호 청소년, 다문화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인가 학교이자 비영리민간단체이다. 이곳에서는 초, 중, 고 과정의 학력취득을 위한 정규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선생님들 대부분은 자원봉사자이다.





교육비 지원 못 받는 비인가 학교 사실 아무리 탈북민이라고 해도 24세가 넘으면 국가가 제공하는 고등교육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비보호 탈북민도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다. 공부나 자격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면 모르지만 정말 공부하고 싶으나 나이 제한 때문에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다면, 그들이 살아가야 할 앞길엔 더 많은 걸림돌과 어려움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학교 선생님들은 제도권의 사각지대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어려움에 처해 접고 마는 탈북민 학생들의 꿈과 미래를 펼쳐주기 위해 자진하여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 등록이 되지 않아 교육비 지원을 받지 못하여 재정이 어려운 실정이다.


“왜 사서 이 고생을 하세요. 비인가학교가 재정 지원을 못 받는다면 인가를 받고 하면 되잖아요.”

“우리나라 법 규정이 24세 이상은 고등교육 지원을 받을 수 없어요. 우리들학교가 허가를 받고 정부지원을 받으면 지금 공부하고 있는 24살 이상 학생들은 다 쫓겨나야 돼요. 그럼 그들은 어디로 갑니까. 여기가 그들이 공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우리가 이들을 밀어내면 이들의 미래는, 꿈은 어떻게 됩니까.”


윤 교장과 선생님들은 비인가 학교를 포기할 수 없다. 학교운영비가 없고 당장 월세 낼 돈도 없지만 학교 문을 닫을 수가 없다. 윤 교장은 학생들의 딱한 사정과 학교 재정 상황을 설명하다 결국 눈물을 훔친다.


“그냥 버티는 거예요. 갈 데까지 가보는 거죠. 처음 시작할 때도 갈 데까지 가보자고 한 것이 벌써 5년이 지났어요. 이번에도 어떻게 되겠죠.”


우리들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에도 어디서 후원을 받을 수도 없었고 마련된 자금도 없었다. 단지 학교를 찾아오는 학생들을 도와주려는 몇몇 신앙인과 선생님들이 돈을 모아 어렵게 학교 문을 열었다. 그리고 5년을 유지해 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


매달 월세며 학교운영비는 둘째 치더라도 안산이나 인천, 평택 등지에서 오는 학생들에게 기숙사는 고사하고 교통비 지원도 할 형편이 못 되었다. 다만 학생들에게 식사는 거르지 않고 먹이고 싶어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밥솥만으로 식사를 준비했다. 그러다 보니 깜빡 잊고 가스레인지를 켜고 수업에 들어가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시장을 보거나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선생님들 몫이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선생님들은 지칠 줄 모른다. 얼마 전부터는 남북하나재단의 도움을 받아 건물 지하에 식당과 도서실, 탁구나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지금도 남북남북하나재단에서 학교 운영에 필요한 소정의 지원을 받고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고 싶어요!


이곳에는 공부를 정말 하고 싶은 학생들이 온다. 부모나 다른 누구에게 등 떠밀려 오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교육열은 아주 높은 편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어렵게 얻은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학생들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한다. 이들은 몇 년씩 길게 공부할 수가 없다. 대부분이 당장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고 북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야 할 형편이다. 최대한 빨리 검정고시를 통과하는 것이 목표이다.


우리들학교가 바라는 것은 학생들이 깨끗한 교육시설과 교육환경에서 실력 있는 선생님들을 통해 기본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다. 최소한 한국 학생들이 받는 기본교육을 받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3회에 걸쳐 20명이 졸업을 했고, 지금 학생 수는 모두 26명이다. 지난해에 40명이었지만 가정형편으로 10여명의 학생이 휴학하거나 중도 포기를 했다. 수업은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방과 후에는 예체능교육을 비롯해 원하면 개별수업도 받는다. 올해 우리들 학교의 예체능교육으로 기타 동아리가 활성화되고 있다.


정규수업이 끝나고 33살 지은이와 보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했어요. 대학공부는 안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현장에서 일을 해보니까 자격증이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늦은 나이지만 공부하기로 결심했어요. 저는 한의사가 되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고, 아픈 사람도 치료하고 싶어요.”


“나는 15살에 엄마를 찾아 중국에 갔어요. 그리고 10년 후 한국에 오다 보니 학교 다닐 수 있는 있는 나이가 지나고 말았어요. 그러던 차에 친구 소개로 이 학교에 오게 됐어요. 처음엔 검정고시만 따자는 게 목표였는데, 여기서 듣고 깨닫는 것이 많아서 앞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중국에 있을 때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신분이 안 되서 할 수 없었지만, 한국에선 뭐든지 노력만 하면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지은이, 무엇이든 노력만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보미, 이들은 공부를 하면서 꿈을 키우고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그들 뒤에는 26명의 지은이와 보미들의 꿈을 그려주고 지지해주는 20여 명의 선생님들이 있다. 이들 모두의 수고와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들학교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저에게 ‘통일은 언제쯤 될까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통일은 이미 이루었습니다. 우리들학교, 바로 여기가 작은 통일한국의 한 모습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남쪽이 고향인 선생님들과 북쪽에 고향을 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매일같이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며 삶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출처] 남북하나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