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에서 봉사활동한 '우리들학교' 탈북민 학생들]

윤동주 교장 주도로 5년 전 시작… 농사 도우며 살아온 이야기 나눠
"강제수용돼 고향 못가는 한센인, 북한 땅 다시 못 밟는 우리와 같아"


"북한에서 태어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소록도에 가보니 저보다 더 힘들고 큰 아픔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세상을 원망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허철근(28·2011년 입국)씨는 27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허씨는 "소록도에서 한센인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봉사 활동을 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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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에 봉사 활동을 간‘우리들학교’탈북민 학생들이 26일 6·25전쟁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박정자씨(맨 왼쪽) 집을 방문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우리들학교

탈북민 대안학교인 '우리들학교'(교장 윤동주) 학생 50여 명과 교직원, KDB 산업은행 통일사업부 직원들이 25일부터 27일까지 소록도를 찾아 한센인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을 진행했다. 이들은 소록도에서 마을의 잡초 제거 등 환경 정화 작업과 감·무화과 따기 등 농사일을 도왔다. 한센인들의 가정을 방문해 그들의 기구했던 삶의 얘기도 들었다고 한다. 저녁에는 마을 교회에 모여 탈북민 학생들이 탈북과 남한 정착 과정을 한센인들에게 이야기했고, 미리 준비해 간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허씨는 "한센인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우리를 친손자·손녀처럼 아껴주셔서 마음이 따뜻해졌다"며 "힘들 때마다 소록도를 생각할 것 같다"고 했다. 중국에서 중국인 아버지와 탈북민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최수지(15)양은 "고향의 할아버지·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마음으로 즐겁게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며 "봉사 활동을 통해 자신감이 회복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탈북민 학생들의 소록도 봉사는 대학 시절부터 20여 년간 소록도 봉사 활동을 해온 윤동주 교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윤 교장은 남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에게 절망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5년 전부터 학생들을 데리고 소록도 봉사 활동을 진행해왔다.

윤 교장은 "북한 땅에 고향이 있지만, 남북 분단으로 갈 수가 없는 탈북민 학생들이 고향을 떠나 강제수용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한센인들을 만나 말벗이 되어주고 농사일도 돕는다"며 "정착에 어려움을 느끼던 학생들이 봉사 활동을 통해 위로를 받고 세상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사진환 KDB 산업은행 통일사업부장은 "탈북 학생들이 소록도 봉사를 통해 혜택을 받기만 하는 사람에서 혜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명성 기자 tongilvis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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